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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이 UCI프로 팀 창단했으면” 로드레이서 박성백

인터뷰“우리 기업이 UCI프로 팀 창단했으면” 로드레이서 박성백
투르 드 코리아 2012에서 종합우승을 거머쥔 박성백
 2007년에 이후 5년 만에 다시 투르 드 코리아 2012에서 종합우승을 거머쥔 박성백. 그가 말하는 투르 드 코리아, 해외 팀에서의 생활 그리고 꿈꾸는 로드레이서의 삶에 대해 들어 본다.
지난 5월 11일, 이태원의 한 골목 앞에서 사이클 선수 박성백(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단)을 만났다. 전화로 약속시간을 한 시간이나 늦추면서 나타난 그는 한눈에도 평소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그가 아니었다. “미용실에라도 다녀왔느냐“는 기자의 농담에 “청담동 미용실에서 협찬해준 머리입니다”하며 너스레까지 떤다. 실제로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는 기자의 손에 “협찬처: 청담 바닐라 by 서애”라고 적힌 메모지를 들려주며 씩 웃는다.
구둣가게 사장님 박성백
같은 사이클 선수출신인 이종사촌동생 김재인 그리고 후배 박종효가 이른 은퇴를 하자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찾다가 열었다는 수제 구두전문점. 동업이고 대부분 동생들이 관리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신발 사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는 그에게 제법 어울리는 사업이다.
 만나는 장소가 하필 왜 이태원이냐고 했더니 “가까우니까 함께 가시죠”한다. 시장어귀의 골목에 들어서 한 40~50m를 걷더니 작은 신발가게로 들어선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용 수제 구두를 파는 가게다. 영문을 모르는 기자에게 종업원이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하는데 눈에 익은 얼굴이다. 알고 보니 지금은 해체된 실업사이클 팀인 수자원공사의 선수였던 박종효.
 반가운 인사를 마치자 그제야 박성백이 설명을 한다. 사이클 선수로 함께 팀 생활을 했던 이종사촌인 김재인, 그리고 후배 박종효와 함께 작년에 이 가게를 열었다는 것.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반가운 얼굴도 보일 겸, 동생들이 있는 가게근처로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 날 박성백은 동생들과 연 가게는 물론이고 이태원의 카페며 골목으로 쏘다니면서도 꼬치꼬치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어떤 때는 진지하게도 혹은 장난스럽게 잘도 대답해 주었다.
말썽꾸러기 박성백
“야, 재인아 형이 휴가 나온 김에 다시 진열해 줄게”, “아~ 형! 조금 있으면 손님들 많이 올 시간인데 이렇게 말썽부리면 어쩌자는 거야?”

 여성용 구두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다. 이 가게는 언제부터 운영했나?

구두를 잘 알아서 시작한 건 아니다. 시작한건 작년(2011년) 10월이다. 사촌 동생인 김재인(전 서울시청 선수), 후배 박종효(전 수자원공사 선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찾다보니 수제 구두가게를 시작했다. 직접 구두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동생들이 거래처를 확보해서 물건을 들인다. 사실 난 우리 팀(KSPO)과 대표 팀을 오가며 훈련에 바빠서 가끔 휴가 때나 와보는 거지 실상 동생들이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제 구두전문점을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 가끔 보는 사복패션을 봐도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방면이 취미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들도 동대문이나 남대문에서 옷가게 하는 녀석들이 많고 인천에 사는 친구는 인터넷 패션몰을 한다.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특히 나는 신발을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사모은 신발이 200켤레는 충분히 넘는다. 대표 팀 생활에 바빠서 이 녀석, 저 녀석 다 집어 가고 정리했지만 아직 100여 켤레가 남아있을 정도다.
백넘버 181번 박성백
투르 드 코리아 2012에서 박성백의 백넘버는 181번. 2007년 투르 드 코리아 이후 5년 만에 그는 옐로저지에 자신의 백넘버를 다시 달 수 있었다.

 이제 사이클 이야기를 해보자. 2007년 투르 드 코리아이후 5년 만에 투르 드 코리아에서 다시 종합우승을 했다. 달라진 것이 있나?

크게 다른 건 없다. 당시(2007년)는 투르 드 코리아가 현재의 투르 드 코리아로 변화*한 첫 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자국선수가 우승을 했으니 많이 회자되었다. 게다가 다음 해가 베이징올림픽이기도 했으니 올림픽출전과 관련해서 더 부각되었을 것이다. 올해 투르 드 코리아에서 종합우승을 하고 몇 군데 인터뷰도와 방송출연도 했지만 당시만큼은 아니다.
편집자 주: 투르 드 코리아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초장기에는 국제 친선교류전의 성격이었고 대회무대도 서울과 일부 지방도시에 국한 되었다. 박성백이 말하는 것은 지금처럼 전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대규모 국제대회로 변한 것이 2007년부터 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2007년과 2012년의 투르 드 코리아가 똑같지는 않을 텐데. 올해는 산악왕에도 올랐지 않는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웃음)변화까지는 비약이다. 2007년과 감회가 다른 건 사실이다. 당시엔 처음으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열린 스테이지레이스에서 종합우승을 한 것이니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게다가 그 때는 8구간까지 종합선두인 후구시마 신이치를 쫓고 있었고 마지막 구간에 역전을 했으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반면 이번 투르 드 코리아는 뜻밖에도 대회중반 내가 종합선두에 올랐고 다른 선수들이 나를 추적하는 형국이었다. 2007년은 빼앗은 것이라면 2012년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비한 결과다.
산악왕 박성백

아무리 그래도 프로컨티넨털 팀까지 다수 출전한 대회인데 ‘뜻밖’이라는 말은 너무 겸손한 표현 아닌가? 그렇다면 올해 투르 드 코리아의 진짜 목표는 무엇이었나?

내 목표는 산악왕이었다. 그 때문에 뜻밖이라고 말한 것이다. 알다시피 올해는 올림픽이 있다. 그래서 대표 팀 훈련과 해외 원정이 많았다. 투르 드 코리아 일주일 전까지도 호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이었으니까. 결국 팀원들과 호흡도 6일 밖에 맞춰보지 못 했으니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투르 드 코리아 코스를 살펴보니 아주 힘든 긴 오르막이 별로 없었다. 내가 산악왕 저지를 입기 시작한 3구간 이후부터는 길어야 3~4㎞내외의 언덕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승부를 걸어 볼만 했다. 그러다 6구간, K.O.M과 구간우승을 동시에 이뤘다. 정말 뜻밖이었고 행운이었다. 이때부터 난 종합선두를 수성(守成)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 전까지는 종합순위를 신경 쓰지 않고 단지 K.O.M에 집중했다. 얼떨결에 종합우승을 했지만 사실 내겐 스프린터 저지가 하나 더 늘은 것 같은 기분이다. 2007년처럼 절치부심,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것이 아니다. 종합우승을 하려고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공을 들였겠는가. 강원도 구간이 없는 것이 내겐 행운이었다. 난 운이 좋았을 뿐이다.

혹시 올림픽시즌에 경기성적이 좋다는 말을 들어 본적 없나? 조금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웃음)인정한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아무래도 대표팀 합숙이 많고 더 꽉 차게 훈련하게 되니까 그런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어떤 동기부여가 있으면 더 성적이 좋아진다. 이건 내가 아니라도 모든 선수들이 그럴 것이다.
이를테면 2006년 나는 군 입대를 앞둔 시점이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도 선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난 도하아시안게임에 임할 때 반드시 금메달을 따서 국방의 의무를 갈음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단체추발과 메디슨 두 종목에서 금메달, 도로경기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자 다른 목표가 필요했다. 그리고 바로 보인 게 투르 드 코리아였다. 투르 드 코리아에서 우승을 하고 나니 베이징올림픽이었고. 그런데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은 출전하고서야 깨달았다. 250㎞ 내내 정말 힘들고 불운의 연속이었다. 조금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후 슬럼프를 겪은 건가? 해외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국내에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위에서 질문 했던 것처럼 난 뭔가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결실이 보이는 타입이다. 누군가 내 슬럼프는 가혹한 올림픽의 충격 때문이라고 말도 하던데, 그보다 내가 스스로 목표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2007년 투르 드 코리아에서 인연을 맺은 후쿠시마 신이치가 자신의 팀(메이탄-홈포)으로 오라고 했을 때도 밖으로 나가면 뭔가 보일까 해서 선뜻 나선 것이다.
그런데 목표가 있어도 힘든 해외생활인데 아무 목표의식 없이 나갔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처음엔 유럽에서 활동한다고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지쳤다. 정말 적응이 안 되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건데 훈련도 개인훈련이 대부분이다. 팀워크를 맞추는 훈련은 대회출전 전 며칠뿐이다. 합숙이 기본이고 평소의 팀워크까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리고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행복이란 걸 그곳에서 깨달았다. 이런 저런 정서적 차이도 내겐 극복하기 힘든 점이었다.
고독한 철학가 박성백
“유럽? 개인훈련?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난 해외에 있으면서 우리말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정서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가까이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았다.”

유럽에서 있으면서 개인훈련만 했다고? 좋은 것 아닌가?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대부분 주말 전에 코치가 다음 일주일의 훈련계획표를 가지고 온다. 그 계획표에 따라서 처음 개인훈련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쯤 라이딩하는데 펑크다. 처음엔 내 불찰이려니 했다. 다음 훈련에는 튜브를 챙겼다. 헌데 도중에 물이 떨어져서 음료수를 사려고 가게를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 곳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돈도 안 가지고 있었으니······. 다음에는 물병 네 개와 튜브, 휴대용 펌프에 지폐 한 장도 챙겨서 훈련에 나갔다. 그렇게 훈련을 하고 있다 보니 갑자기 서럽더라.
이게 과연 선진훈련법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훈련에 팀카가 따라오고 물병이며 튜브 같은 건 선수가 챙기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난 팀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대우를 받고 훈련에도 아무 불만이 없다. 가끔 그런 것에 불만을 하는 후배를 보면 말해 준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훈련을 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지 말이다.

그럼, 앞으로 해외에서 다시 러브콜이 와도 정말 응할 생각이 없는 건가?

우리나라 사이클 선수로서 국위를 생각하면 당연히 러브콜에 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방법, 아니 내 개인적인 바람은 유럽 시장을 겨냥한 우리나라 기업이 UCI프로팀을 창단했으면 한다. 프로팀이 출전하는 UCI월드투어는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하게 된다. 하루짜리 클래식대회를 제외하고 한 대회에 짧게는 5일 길게는 3주 동안 경기를 하게 되는데 유럽에서는 사이클이 축구에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이므로 노출효과도 대단하다. 난 우리나라 기업이 이런 정보를 몰라서 그렇지 제대로 알기만하면 이런 좋은 광고수단을 그냥 놔둘 리 없다고 본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선수가 주축인 UCI프로 팀 말이다.
편집자 주: 2011년 레드불이 F1팀 운영에 쏟아 부은 1년 예산이 우리 돈으로 3300억원. F1 하위 팀이라고 해도 1500억원이 넘는다. 2006년 우리나라 중위권 프로축구단의 1년 예산은 140~180억원. 현재까지의 물가나 선수연봉 상승을 감안하면 200억원이 넘는다는 말이다. 이는 현재 UCI 상위 팀의 1년 예산을 웃도는 수준.
즉, F1 하위 팀 하나 꾸릴 예산이면 월드투어에 출전하는 상위 프로 팀을 10여 개 꾸려나갈 수 있으며, 국내 프로축구단 하나를 운영할 수 있으면 1년 내내 세계를 무대로 뛰는 중견 UCI프로 팀 한두 개를 운영할 수 있다. 아울러 유럽에서 프로 사이클링은 어느 때고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볼 수 있는 인기 스포츠다. 참고로 2012 UCI월드투어는 지난 1월 호주에서 시작했으며 90%이상 유럽에서 경기를 하고 총 28개 대회가 있으며 오는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시즌을 마친다.

그런 스폰서가 생기려면 월드투어에 내보일 만한 성적이 있어야하고 선수들의 경기력도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 선수들의 현 주소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올림픽과 같은 개인도로경기 보다 월드투어의 스테이지레이스가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고 본다. 스테이지레이스는 기본적으로 팀 경기이다 보니 단체전에 강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더 적합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랜드투어에서 우승을 하라면 그건 무리다. 하지만 일본의  아라시로 유키야(팀 유로카), 벳부 후미유키(오리카 그린에지)도 유럽을 무대로 뛰고 그랜드투어도 완주한다. 우리라고 그들보다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올림픽 대표 팀의 박성백
“올림픽 출전 종목을 선택하라고요? 생각할 것도 없이 도로경기죠. 동료들이 서운해 할 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지난 베이징에서 아쉬움이 많아요. 그 때를 말하면 사람들이 제 앞에서 말을 아끼는데 꼴등이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제가 최선을 못 보여준 경기는 모두 꼴등과 마찬가지인 걸요. 저는 이번 올림픽에서 저의 최선을 보이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다. 부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는 어떤가? 올림픽 이후의 계획은 있나?

주어지는 종목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남자 올림픽 대표팀은 옴니엄에 출전하는 조호성 선배를 제외하고 트랙경기에서 단체추발, 그리고 도로경기에서 개인도로경기 출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도로경기에 출전하고 싶다. 단체추발은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고 세계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니 메달을 생각한다면 단체추발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도로경기는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을 보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한 번 나를 걸고 최선을 다해 보이고 싶다. 올림픽 이후?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마 팀에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가다듬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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