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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이클리스트, 구성은

인터뷰꿈꾸는 사이클리스트, 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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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선수를 꿈꾸던 소녀, 국군체육부대의 여자 사이클선수, 한국최초의 월드컵 은메달, 아시아 스크래치, 포인트 챔피언, 유니버시아드 도로경기 챔피언. 이런 독특하면서도 화려한 이력의 사이클 선수가 있다. 
대구광역시체육회 사이클 선수이자 현 국가대표의 맏언니 구성은(28, 대구광역시체육회)이다. 올해로 실업선수 10년차 베테랑이지만 그 속은 아직도 꿈꾸는 왈가닥 소녀인 구성은을 전국체전을 앞둔 대구 만촌자전거경기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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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도로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구성은과 만촌자전거경기장에서 만났다. 잠깐 훈련복장으로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헬멧과 선글라스를 벗으니 사과머리가 아주 깜찍하다. 천생 개구쟁이 왈가닥 소녀. 
 

“정~말 왈가닥이었죠. 축구선수가 꿈이었어요. 여자 축구선수요.”

어린 시절 구성은은 어떤 아이였나?

 부모님 모두 운동신경이 좋으신데 내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밖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여자아이들과 어울린 적이 없었다. 주로 운동장에서 남자들과 축구나 야구를 했다. 초등학교 때 꿈이 축구선수였는데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자축구팀이 있는 학교를 알아봤을 정도다. 하지만 대구 인근에 그런 학교가 없어 중학교 진학하며 축구선수의 꿈은 접었다.
 

그럼, 사이클 선수가 된 계기는?

그렇게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내 모교 교기가 사이클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벨로드롬으로 견학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선수들이 앞뒤로 바짝 붙어서 달리는데 (아마도 단체추발이었던 듯) 서로 부딪쳐 넘어지지 않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 뒤로 아버지께 사이클 선수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여자가 하기에 험한 운동이라고 반대하셨다. 하지만 내 고집도 보통이 아니어서 결국 사이클부에 입부를 하긴 했는데 사실상 1학년 내내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보내고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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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은은 개인도로경기는 물론, 크리테리움과 도로독주 등 도로경기 전종목에 능란할 뿐 아니라 중장거리 트랙경기종목에서도 꾸준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기자가 구 선수를 처음 만난 때가  2006년 서울시청 팀 시절이다. 당시에도 실업 3~4년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전에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이면 여자 선수가 굳이 국군장병이 될 이유가 있었나?

 사실이다. 실업팀 생활을 상무에서 시작했다. 2년 뒤 서울시청으로 이적해서 4년 있었고, 천안시청 1년, 현재 대구체육회 사이클 팀에서 3년차다.
내가 상무 출신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왜?”, “남자들도 꺼리는 군대를 여자가···”하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이유는 생각 외로 단순하다. 그 때만해도 고등부 선수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훈련을 했는데 실업팀을 가면 너무나 자유로워서 운동이 잘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시 상무는 여자선수들을 받았는데 내 위로도 언니(선배)들이 두 명 있었다. 알다시피 상무는 엄격한 군기 속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운동에 전념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상무소속 남자 선배들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그 선배들에게 더 많은 훈련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선배들과 연락하고 지내는데 지금은 대부분 경륜선수거나 선수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가 웃기기도 하지만 나름 상무 출신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훗날 내가 늙어서 자서전을 쓴다면 상무시절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 다른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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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야기를 물으니 부끄러워하면서도 회상에 잠기는 표정이 사뭇 장난꾸러기처럼 변한다.
 

“전국체전을 포기하고 세계선수권을 출전하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 같고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도 있는 것 같다. 주니어 시절에 목표하던 바와 지금의 목표가 변함없나? 

 그렇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그저 막연하게 국가대표가 목표였다. 누구나 꿈꾸는 거지만 실업팀 생활하면서는 올림픽 메달이 목표였다. 사실 그 생각뿐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벌써 국가대표 중에서도 가장 언니가 됐다. 올림픽에 출전도 해봤고 출전 못하고 좌절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많아진다. 물론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 하겠지만 설사 다시 올림픽에 출전 못하더라도 ‘내 꿈은 올림픽 금메달뿐이다’라고 말할 나이는 아니다.   
 

그럼, 현재의 목표는 뭔가?

 우선 현재의 목표는 인천아시안게임이다. 올림픽 메달이 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난 아시안게임 메달도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네가 아시안게임 메달이 없어?”, “다음 올림픽은 준비하지 않으려고?”하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아시안게임 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일일이 다 이야기는 못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인천아시안게임에는 꼭 내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다음 올림픽은······ 글쎄,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가장 가까운 미래부터 준비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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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은이 10월 11부터 열리는 전국체전의 벨로드롬인 만촌자전거경기장 트랙을 둘러본다. 올해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위해 출전한 투어 오브 총밍에서 부상으로 올림픽대표에서 중도하차하고 재활을 하며 준비한 대회인 만큼 남다른 각오로 전국체전을 치르겠다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것처럼 들린다. 위로가 될지 반대로 오해가 될지 모르지만 혹시 올림픽 무용론에 대해 들어 봤는가? 

 얼핏 들은바 있다. 근대올림픽은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던 축제였는데 그 출전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엘리트선수를 양성하거나 프로선수들을 출전시키면서 그 정신을 훼손했다는 것이고, 그런 올림픽은 더 이상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골자라고 안다. 
 
(기자)맞다. 거기다가 일부에서는 스포츠의 순수한 경기력을 겨루는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 출전에는 인색한 반면에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는 못 나가서 안달인 것도 아이러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역별 쿼터제의 모순점은 치워두고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 아시아챔피언을 지낸 선수는 많지만 월드컵종합우승자나 주니어선수를 제외하고 세계선수권 랭킹자라고 부를만한 선수가 없다. 실제로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나 수영의 박태환도 이런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는가. 이런 걸 건너뛴 올림픽 메달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나?
 
 ······ 물론 안타깝다. 아시아권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그래도 전 시즌 출전이 아니라고는 해도 몇 해 전부터는 트랙월드컵에 꾸준히 출전도 한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는 전국체전에 임박해서 열리거나 기간이 겹치는 일이 많아 출전이 쉽지 않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이클 팀들은 대부분 지자체나 공사소속인 경우가 많아서 전국체전 메달이 아주 중요하다. 체전실적에 따라서 각 팀들의 예산이나 선수지원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라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수 개인이 원한다고 출전할 수 있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아니다. 전국체전을 반납하고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힘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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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도 자전거를 챙겨서 다닌다는 구성은. 매일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제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라고.
 

“성백아, 제발 철 좀 들어라”

 

이야기가 너무 무거운 쪽으로 흘렀다. 화제를 바꿔보자. 구성은의 일상은 어떤가.

 일상? 대부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늦어도 7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대부분 오전에는 웜업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 자전거를 타는데 훈련프로그램에 따라 도로 또는 트랙에서 훈련한다. 시즌이 한창이거나 중요한 대회에 임박해서는 오전, 오후 모두 자전거로 훈련하기도 한다. 그리고 휴일이거나 주중 휴식일이 생기면 학교에 간다.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가 논문학기라 준비할 게 많다. 처음에는 운동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는데 공부란 것이 하면 할수록 욕심도 나지만 파고들수록 어려워져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지난 5월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된 것 같아 보이는데 괜찮은가? 

 런던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마지막 대회였던 투어 오브 총밍(중국) 출전 중에 사고가 있었다. 2스테이지에서 결승선을 앞두고 라스트 스퍼트를 시작했는데 300m정도 앞두고 낙차를 했다. 오른손 중지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했는데 현재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 굴신이 힘들다. 계속 재활치료 중인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워지려면 1년은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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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투어 오브 총밍에서 낙차사고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다쳤다. 아직 왼손에 비해 약간 붓기가 있고 가운데 손가락은 굴신이 자연스럽지 못 하다고. 부상 후 재활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에 잠시 방황했지만 선배 조호성의 조언을 듣고 퇴원과 동시에 바로 핸들바를 잡았다고 한다. 조호성 왈 “부상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자전거를 못 타는 고통만 하겠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바이크왓에서 진행한 ‘박성백의 남산 미팅’에서 박성백이 “구성은은 제 소변도 마신 적 있어요”라고 해서 그 일을 계기로 곤욕을 치렀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 – ■관련기사: 박성백의 남산 미팅

 그 녀석이 그 일을 무덤까지 가져간다고 했을 때 웬일인가 했었다. 내 친구지만 정말 괴짜다. 아니 속된 말로 똘아이라고 하는 표현이 정확하다. 기사가 나가고 SNS와 메신저로 “정말, 성백이 소변 마셨어”라고 묻는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누군가 메시지에 기사를 링크해 줘서 자초지종을 알게 됐던 거다. 그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그 자리에서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는데 어릴 때는 개구쟁이 짓이 좀 심해도 그 정도로 괴짜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장난기가 넘쳐난다. 어쩔 때는 철없는 동생 같기도 하고···. 이제나 저제나 우리 성백이 철 좀 들어야 할 텐데.
 
 

그 때문에 SNS에 해명 글까지 올렸던데 당시에 그 글을 보고 기자가 구 선수에게 전화를 했었다. 당시에 설욕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어디 한번 후안무치의 박성백을 폭로해 보라. 에피소드라도······. 

그래도 친구인데··· 이래도 괜찮으려나. 주니어대표 때부터 호주로 전지훈련을 간 적이 몇 번 있다. 2002년이던가. 당시 나는 홍일점으로 대표팀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선수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혼자여서 심심하기도 하고 남자 숙소를 찾아가 문을 열었는데 박똥백(구성은이 부르는 박성백의 애칭?)이 알몸으로 현관에 서서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고 있더라. 아무리 남자라도 대부분이 숨거나 욕을 하며 문을 닫을 텐데 저 할 짓 다하고 얼굴 한 번 힐끗 보더니 “에이~씨” 그러는데 오히려 내가 무안해서 문을 닫았다.
그건 내 실수라고 쳐도 더 황당한 일이 있다. 이것도 호주에서의 일이다. 대표팀 모두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갑자기 남의 집 정원으로 뛰어가더니 바지를 내리고 큰일을 보는 게 아닌가. 여자선수들도 모두 함께 있다가 못 볼 꼴을 봤다. 황당해 하는 우리에게 겨우 한다는 말이  “가까이 오지마”가 전부였다. 보통 남자들끼리도 이런 일은 없지 않나? 그리고 그 집 주인은 나중에 그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을까? 이밖에도 그 녀석의 철 없는 짓은 많지만 내 오랜 우정을 봐서 이 정도로 넘어가 주겠다.
  
 

둘이 동기고 친구라더니 닮은 구석이나 공통점도 있지 않나?

 천만에. 정반대다. 휴가 때만 보더라도 그 녀석은 자전거는커녕 운동은 털끝만큼도 안 한다. 예전 서울시청 시절 일인데 주말동안 클럽에서 밤을 새고 돌아온 녀석이 다음 날 100㎞가 넘는 도로 훈련을 다 소화하더란다. 그 때 서울시청 정태윤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 “저 녀석은 다른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서인지 훈련에는 스트레스가 없네. 그려”하고 두 손드셨을 정도다.
반면 나는 휴가 때도 자전거를 챙겨가야 한다. 휴가 때 집에 가서도 매일 같은 훈련을 해야 하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 예전에는 경기력을 유지하려는 훈련의 일환이었지만 지금은 습관이고 항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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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백이 본 매체에서 진행한 ‘박성백의 남산 미팅’에 나와 “여자 후배나 동기들을 괴롭힌다는데 왜 그러는가?” 라는 취지의 질문에 “친하다는 표현이고 악의는 없다. 자신이 좀 지나친 건 인정한다. 동기 구성은은 내 소변도 마셨지만 그것도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해 그 여파로 곤욕을 치렀다고. “그 녀석, 데리고 오지 그랬어요. 팡팡 패주게”
 

휴가 때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훈련을 한다고?

 학교에 가거나 다른 일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휴가 중에도 평소처럼 매일 자전거를 타야 한다. 어렸을 때 훈련이 싫증나서 며칠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적이 있는데 몸이 근질거리고 훈련할 때 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내 소속팀인 대구시체육회의 김재규 감독님은 혼자 도로훈련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만류하시지만 난 혼자 도로를 달릴 때가 진정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체전 마치면 응원해준 동호인들과 라이딩하고 싶어”

 

올해 투르 드 코리아 스페셜경기에 출전해서 남자 동호인들과 함께 레이스를 했었지 않나. 그 이후 페이스북 친구들이 꽤 많이 늘고 종종 함께 라이딩 하자는 글도 올라오는 것 같다. 트루 드 코리아 이후 동호인들과 함께 라이딩한 적이 있나?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투르 드 코리아 이후에 바로 투어 오브 총밍에 갔고 부상으로 치료와 재활, 그 이후에는 전국체전 준비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투르 드 코리아에서 만난 대구지역 동호인들이 불러 준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번번이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체전이후에 기회가 되면 동호인들과 함께 라이딩도 하고 싶다.
 
 

페이스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 7월 이민혜와 인터뷰(■관련기사: 커피가 도핑, 밤샘수다는 일탈인 사이클 바보, 이민혜)를 진행하다가 구 선수 이야기가 나온 적 있다. 자신은 SNS를 잘 모르는데 성은언니는 페이스북에서 팬 관리까지 한다는 거다. 실제로 페이스북으로 팬 관리를 하나?   

 에~이, 과장이다. 그저 가끔 내 생각이나 혼잣말을 긁적이는 정도다.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친구신청을 하면 그 사람 페이스북 사진을 보고 자전거 타는 사진만 있으면 친구신청을 받아준다. 적어도 나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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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에서 올해 준비한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는 구성은. 체전 이후에는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동호인들과 라이딩을 하고 싶다고.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뷰 서두에 “훗날 자선전을 쓴다면···”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자서전에 꼭 쓰고 싶은 말이나 일화가 있나?

 그건 내가 어려서부터 또래 여자애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했고, 운동선수가 되고서도 다른 선수들이 하지 않는 선택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말 훗날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2004년 한 해 동안 겪은 일들이 빠질 순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경험과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한꺼번에 겪은 해이니까. 
 
 상무에 입단하고 이듬해인 2004년, 행운처럼 UCI훈련생으로 발탁되어 3개월간 스위스 UCI월드사이클링센터에서 훈련을 받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사이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그 곳의 분위기와 낯선 곳에서의 자유로움에 행복한 나날이었다. 
UCI에서 훈련이 성과가 있었는지 나는 그 해 5월 트랙월드컵4차전에 출전해 스크래치에서 한국최초로 월드컵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말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는 기분이었다. 그대로라면 아테네올림픽 출전도 무난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올림픽대표선발전을 따로 치르기로 결정을 했고, 결국 나는 국내에서 치러진 올림픽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고 한동안 방황을 했는데 그 무렵 휴식 겸 대구의 본가에서 지냈다. 내가 다시 팀으로 복귀하던 날, 어머니는 걱정이 되셨는지 창원벨로드롬까지 배웅을 나오셨다가 마침 자전거 타던 선수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머리를 크게 다치신 어머니는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됐다. 당시 전국체전을 앞두고 신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체전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어머니 목에 걸어 드릴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말 그 해 전국체전 개인도로에서 금메달을 따서 어머니께 걸어드렸다. 다행히 어머니는 기적처럼 회복하셨다. 비록 뇌병변 3급이라는 장애가 남기는 했지만 딸을 위해 고맙게도 떨치고 일어나신 것이다. 
그 날 이후, 난 다짐했다. 훗날 내가 누군가에게 내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꼭 이렇게 말할 수 있게 살겠노라고.
 
“난 누구보다 남다른 선택을 하며 살았지만 한 번도 포기라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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