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트에게 'BONT'를 묻다

onAug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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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클 트랙경기의 제왕 크리스 호이 그리고 2012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자인 브레들리 위긴스의 공통점을 아는가? 영국인, 올림픽 금메달, 각 분야에서 모든 것을 이룬 사이클 선수, 기사작위. 그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을 고른다면, 둘 다 같은 브랜드의 사이클 슈즈를 신는다는 것.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본트(BONT)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케이트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브랜드다. 그런 본트가 언제부터인가 사이클 슈즈에서도 인망을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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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트의 CEO인 알레산더 본트와 그의 부인인 김수연 씨.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한국에서 2명의 본트를 만났다. 본트의 CEO인 알렉산더 본트와 그의 부인이자 마케팅 매니저인 수연 본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알렉산더의 부인인 수연(한국이름 ‘김수연’) 씨는 한국인이다. 이들은 한국에 본트의 기술교육차 방문했다가 수연 씨의 고향인 양양에서 추석명절까지 새고 호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지나는 말로 이들에게 잠깐 들은 본트라는 회사는 의외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신는 신발을 만드는 회사가 온 가족이 회사의 구성원인 작은 가족기업이라는 것. 게다가 CEO는 아주 젊고 부인은 한국인이다. 궁금한 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첫 만남은 짧게 자리를 파했다.

한 달 뒤, 강원도 고성에서 늦은 휴가를 즐기고 있던 기자는 양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금쪽같은 휴가의 마지막 날, 낙산해변 커피향 짙은 카페에서 본트 부부를 다시 만났다.

본트의 취미생활, 스케이트

본트는 어떤 기업인가?

 우리는 가족기업이다. 1975년, 내 아버지인 인즈 본트(Inze Bont)가 스피드 스케이트 슈즈를 제작하는 공방을 열게 된 것이 본트의 시작이다. 지금은 스피드 스케이트는 물론 쇼트트랙과 인라인 스케이트, 롤러 스케이트화는 물론 사이클 슈즈까지 생산한다. 현재 56개국의 딜러들과 거래하고 있으며 중국과 미국에는 별도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연간 10만 켤레를 생산하고 그 중 30%가 사이클 슈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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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트의 창업자이자 알렉산더 본트의 아버지인 인즈 본트와 어머니 사라 본트. 두 사람의 취미가 스케이팅이었다고. 

아버지는 어떤 계기로 스케이트 슈즈를 만들게 됐나?

 네덜란드 출신인 조부모님은 아버지가 2살 때 호주로 이민을 오셨다. 네덜란드는 예나 지금이나 빙상스포츠 강국이고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즐겨 탄다. 아버지와 어머니(Sara Bont)도 친구들과 어울려 스케이팅을 즐기는 것이 취미셨다. 가죽세공 장인이던 아버지는 좀 더 빠르고 재미있게 스케이팅을 즐기기 위해 손수 스케이트화를 만드셨는데 당시에는 생소했던 유리섬유를 적용했다. 단단한 유리섬유로 힐컵(신발 뒤꿈치에서 발목까지의 부분)을 강화해서 발목이 비틀리는 것을 방지했더니 빙판을 더욱 힘 있게 지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인즈 본트는 사업적인 안목이 뛰어난 것 같다.

 처음부터 사업을 염두에 두고 하신 건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아버지는 가죽세공사셨다. 가죽으로 가방이나 지갑, 식탁커버 등 일상에 필요한 소소한 소품을 만드는 것이 직업이었다. 스케이트화는 단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친구 중에 마이크 리치몬드(Mike Richmond)라는 분이 자신의 스케이트화를 만들어 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했다. 그는 당시 호주국가대표였는데 줄곧 2등만 하는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를 위해 당신의 스케이트화처럼 힐컵 주변을 유리섬유로 강화해 그의 발에 꼭 맞고 흔들림이나 유격이 없는 스케이트 슈즈를 만들었다. 그는 그 해 호주 내셔널챔피언에 올랐고 영연방 국가대항경기이자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챔피언십의 전신인 브리티쉬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둬 일약 스타가 됐다. 그 이후 아버지에게 세계 곳곳에서 스케이트화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어 왔다고 한다. 이게 본트의 창업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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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을 위해 만들었던 스케이트화. 친구의 부탁으로 같은 신발을 만들었는데 그는 승승장구해 호주 내셔널챔피언은 물론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그 후 인즈 본트는 세계 곳곳에서 스케이트화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 밀려들었다고.

알렉산더 당신도 어린 시절 스케이트 선수였다고 들었다. 가업이 선수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16살부터 21살까지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했다. 사실 난 우리 집 일이 싫었다. 어린 시절 방과 후에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집에 가면 스케이트화용 가죽을 재단하는 작업이나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다. 늦게까지 일을 돕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얼마나 몸이 무거운지 스케이트 훈련도 힘든 적이 많았다. 평소에도 그 정도였는데 방학 때는 어땠겠는가? (웃음)내가 스케이트를 포기하고 공부로 전향한 건 순전히 대학에 가서 집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트,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찾다 


자전거산업에서는 최근에서야 일반화된 기술을 본트는 일찌감치 사용했던데 소재나 기술의 변천을 말해 달라.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아버지가 1974년에 처음으로 유리섬유를 스케이트화에 적용해 큰 반향을 이끌며 창업의 토대를 만들었기에 우리는 신소재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리섬유는 1986년에 이르러 더욱 강도 높고 내구성이 뛰어난 케블러로 대체되었고 1989년에 이미 아웃솔과 힐컵을 탄소섬유로 만들었다. 그리고 탄소섬유를 사용하고부터 사람들의 발에 맞춰 아웃솔을 변형하는 열성형기술을 개발했다.

어떻게 그렇게 신소재에 대한 접근이 빨랐나?

사실 탄소섬유의 적용은 운이 좀 따랐다. 우리가 거래하던 유리섬유회사에서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으니 제품에 적용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소재가 바로 탄소섬유였다. 유리섬유나 케블러는 햇빛에 노출되면 1~2년 사이에 자연스럽게 성질이 변해서 변형되거나 내구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탄소섬유를 장시간 테스트해본 결과 그런 현상이 없었다. 이런 소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탄소섬유로 만든 밑창을 사용자 발에 꼭 맞출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다. 
탄소섬유는 처음부터 단단한 게 아니다. 레진(합성수지)을 발라 굳히는 것인데 우리는 특수한 레진을 개발했다. 상온에서는 아주 단단하지만 열을 받으면 부드럽게 변하는 합성수지의 배합을 개발해 지금 본트의 열성형기술을 완성했다. 

기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본트의 열성형이 다른 신발브랜드의 열성형과 다른 점은 뭔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본트 이외에 카본 부위가 직접 성형되는 신발은 없다. 대부분 외피와 깔창이 성형되는 것인데 본트는 카본으로 만들어진 밑창과 힐컵 등 카본이 적용된 부위는 모두 열성형으로 사용자 발에 맞출 수 있다.

본트, 한국의 본트를 만나다


두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됐나?

수연: 2004년 처음 만났다. 난 한국에서 본트 스케이트화를 취급하는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였는데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이메일로만 업무사항을 주고받던 사이었다. 같이 업무를 하다 보니 출장이나 국제대회 현장에서 만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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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파트너였다가 친구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알렉산더와 수연 씨. 중국 공장 이전부터 제품홍보를 위해 각종 국제대회에 발품을 팔며 세계 곳곳을 함께 누볐다고.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나?

수연: 아니다. 처음에는 친구사이였다가 어느 날 프로포즈를 하기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 한국으로 보내는 스케이트화 박스에 선물을 보내는 등 끈질기게 구애를 하더라. 그 뒤로도 몇 번 거절했다. 그러다가 2005년 연말에 다시 한 번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 때 조금 장난스럽게 “그럼, 2006년 1월 1일부터 사귀는 걸로······” 했다가 정말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언제부터 사귀게 됐냐고 물으면 2006년 1월 1일이라고 말한다(웃음). 그리고 그해부터 나도 본트에서 일을 했고 결혼은 2009년에 했다.  

알렉산더: 기사에는 제발, 수연이 날 좋아서 쫓아다녔다고 써줬으면 한다.
기자: 한국 사람은 적극적인 남자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수연 씨의 프로포즈를 당신이 거절했다고 쓰면 한국인들은 본트를 아주 싫어 할 텐데······.
알렉산더: 오! 기사는 사실대로 써야지······. 
수연: (웃음)

본트의 공장이 2006년에 중국으로 이전했다고 들었다

사실 우린 조금 늦은 편이다. 어떻게든 호주에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늘어가는 생산량과 공장유지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2006년 10월 중국으로 이전했다. 중국에서 이미 스케이트화를 생산하는 공장을 섭외해서 OEM생산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새로 공장을 만들어야 했고 거의 1년간 중국에 상주해야 했다. 
처음에는 호주의 생산시설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는데 중국에서 시설반입을 거절하고 우리 장비를 소각해 버려서 생산시설부터 모두 새로 들여야 했다. 그 때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직원들을 교육시켜서 첫 스케이트 슈즈 생산에 성공했다. 현지인들도 이렇게 빨리 공장이 가동될지 몰랐다며 아주 놀라워했다.  

수연 씨는 본트가(家)의 일원이 되고서 어떤 일을 했나?

원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케팅 매니저를 맡고 있다. 그리고 중국공장 이전 시기에는 사원교육도 했고 시부모님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시면서는 신제품 기획, 디자인, 바이어미팅, 제품선적에 경리까지 멀티플레이어다.

본트, 영웅과 만나다


스케이트 슈즈로 명성을 날리던 본트가 언제부턴가 사이클 슈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2006년 내가 아버지를 이어 경영일선에 막 뛰어들었을 즈음 영국에서 이메일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전 영국의 사이클선수 크리스 호이입니다. 
제 친구가 스케이트 선수인데 그 친구의 소개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사이클 선수도 스케이트 선수처럼 전용 슈즈를 신는데요. 제가 사용하는 사이클 슈즈는 3개월이 못가 늘어나거나 변형이 되어 못 쓰게 됩니다. 스케이트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새 신발에 적응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경기력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거든요. 그런 고민을 그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본트를 소개해 줬습니다. 그 친구 말이 본트의 스케이트화는 1년이 지나도 해지거나 늘어나는 일이 없다면서요. 가능하다면 당신들이 내게 아주 튼튼한 사이클화를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트의 사이클 슈즈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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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호이는 역대 사이클선수 중 가장 많은 올림픽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2012 런던올림픽까지 총 7개의 올림픽메달을 거머쥐었으며 그 중 6개가 금메달이다. 아울러 올해 4월 은퇴까지 총 11개의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고 2009년 영국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서임받기도 했다.

잠깐! 그 유명한 영국의 트랙선수 크리스 호이 경(卿)을 말하는 것인가?

당시에는 그렇게 유명한 선수인지 몰랐다. 그저 ‘유망한 선수가 사정이 딱하게 됐구나’하고 생각한 정도였다. 나중에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이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크리스 호이에게 어떻게 신발을 만들어 줬는지 조금 더 자세히······

처음부터 확답은 하지 않았다. 차후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우선 사이클 선수들이 신는다는 사이클 슈즈를 구해서 구조를 분석했다. 우리가 본 당시의 사이클 슈즈는 스케이트화로 적용해 선수들에게 신긴다면 크리스 호이의 말대로 오래지 않아 변형이 오고 경기에 지장을 초래할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크리스 호이에게 발 모양을 본뜰 수 있는 석고스타킹을 보냈고 그의 족형을 토대로 맞춤 신발을 만들었다. 

그럼, 본트와 다른 사이클슈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모든 사이클 슈즈가 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많은 카본 사이클 슈즈들이 합성수지 미드솔에 카본 원단 한 장짜리 아웃솔을 덮어서 신발과 접착하는 식이다. 
반면 본트 신발의 밑창은 얼음을 지치거나 자전거 페달을 밟기 유리한 방향으로 카본섬유를 여러 장 적층해서 만든다. 그릇처럼 빚은 밑창을 신발내피와 일체화시켜 밑 작업으로 알맹이 신발을 만든 후 이 알맹이 신발에 신발 외피 등을 붙여서 신발을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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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트는 카본 밑창과 신발 내부를 일체화 시킨 알맹이 신발을 먼저 만들고 이후 외피를 붙여서 신발을 완성한다.

사이클화와 스케이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이클 슈즈에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사이클 슈즈도 스케이트 슈즈와 마찬가지로 신발이 추진력을 전달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발을 만드는 전체적인 공정은 동일하다. 단지 얼음을 지칠 때와 페달을 밟을 때의 힘의 방향만 다른 것이다. 즉, 밑창을 만들 때 사이클 슈즈와 스케이트 슈즈는 카본원단의 적층 방향과 모양, 적층두께가 서로 다르다. 
스케이트 슈즈의 경우 스피드스케이트와 쇼트트랙용 신발의 밑창 적층구조가 다른데 트랙의 반경에 따라 스케이트 날에 걸리는 힘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로드바이크용 사이클 슈즈와 트랙바이크용 사이클 슈즈도 카본 레이어 수와 크기, 적층방향이 모두 다르다.

혹시 다른 사이클 선수들과도 일화가 있나?

수연: 일화라고 할 건 없고, 브레들리 위긴스가 크리스 호이와 영국 올림픽대표 지원팀의 추천으로 우리에게 신발을 맞추고 있다. 2012 투르 드 프랑스와 런던올림픽에 모두 본트를 신고 출전했다. 모비스타의 퀸타나와 코스타 선수도 본트 신발을 신는다.
한국 선수로는 금산군청의 최형민 선수가 본트를 사용하는데 투르 드 코리아 2013에서 산악왕이 됐다는 소식에 주문한 신발을 빨간 방울무늬로 디자인해주기도 했다. 사실 형민이는 고향후배다. 어머니끼리 친구시라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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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투르 드 코리아 2012 산악왕에 오른 금산군청의 최형민 선수는 김수연 씨와 한 동네에서 알고지낸 누나 동생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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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씨는 최형민이 본트에 주문한 신발을 레드 폴카 닷 무늬로 디자인해 보냈다고 한다.

크리스 호이와 브레들리 위긴스의 신발은 어떤 특징이 있나?

크리스 호이는 워낙 힘이 좋아서 그런지 우리 기성 사이클 슈즈의 아웃솔도 아주 단단하고 강한데 그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신발에는 카본 레이어가 한 장 더 추가된다.
반면 브레들리 위긴스는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예쁘게 만들어 달라는 식이다. 작년 투르 드 프랑스 전에는 옐로 저지를 입을 수도 있으니 노란색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고, 황금색을 좋아해서 금색 슈즈도 만들었다. 런던올림픽 전에는 영국국기인 유니온 잭 문양의 신발을 주문하기도 했다. 게다가 영국 올림픽대표팀은 이미 자신들만의 리오올림픽용 사이클슈즈까지 독점 공급해 달라고 주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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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투르 드 프랑스 개인종합우승자인 스카이팀의 브레들리 위긴스는 크리스 호이와 영국 올림픽대표 지원팀의 추천으로 본트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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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들리 위긴스의 사이클 슈즈. 노란색은 2012 투르 드 프랑스에서 옐로저지와 맞춰 신은 본트 제로. 금색을 좋아해 황금색 신발도 주문했다고.  

“우리가 최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가 우리를 선택한다.”


국제대회에도 직접 다녔다고 했는데 후원선수가 있나?

후원선수? 사실 우리는 후원선수가 없다. 

크리스 호이나 브레들리 위긴스도 후원선수가 아닌가?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린 작은 가족기업이다. 그런 유명한 선수에게 돈을 주면서 신발을 신어달라고 계약할 정도로 우린 부유하지 않다. 그저 그들이 우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신발을 만들어 갈 뿐이다.

국제대회에는 어떤 일로 찾아다닌 건가?

스케이트계에서 본트는 잘 알려진 편이고 스케이트 대회의 분위기도 잘 알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 반면 사이클화는 후발주자이기에 조금 생소했다. 그래서 사이클경기를 직접 보고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필요했다. 우리 사이클화에 대한 홍보도 필요했고.
로드레이스는 찾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트랙월드컵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수연과 배낭 하나씩을 매고 찾아갔다. 벨로드롬이라는 공간에 모여 있으니 선수들을 만나기도 쉬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쑥스러웠지만 우리 신발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면 아주 좋은 반응을 보였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서 족형을 떠서 신발을 만들어 보내달라는 선수들도 생겨서 주문을 받아 돌아오는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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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을 본뜨는 알렉산더 본트. 본트는 아직도 많은 공정을 수작업으로 한다. 카본작업도 산업계에서 일반화된 프리프레그 대신 일일이 원단에 레진을 발라 마사지해서 밑창을 만든다고. 본트는 좋은 품질의 신발을 위해서는 계속해 이런 작업을 고수하겠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본트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만드는 신발에 대한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요즘 세상에 뭐 하러 손으로 일일이 신발을 만드느냐”고도 하고 “거칠고 볼품없어 보인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린 그 신발이 감히 ‘세계 최고의 신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본트는 항상 최고를 찾아가지 않았다. 단지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신발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최고의 선수들이 찾아와 우리 신발을 신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린 계속 그들의 족형을 뜰 것이고 손으로 일일이 재단하고 카본원단에 일일이 레진을 마사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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